피곤한 직장인의 잡담

논어 계씨(季氏)에 나오는 네 가지 종류의 사람과 나를 위한 배움

열공열공 2024. 3. 1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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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계씨를 보면 공자님께서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을 언급하셨는데, 그 네 종류는 다음과 같다.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 곤궁해서 배우는 사람, 곤궁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

 

여기서 최상은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으로 그냥 간단하게 천재를 생각하면 된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가히 최상이라 불릴 만하다.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다.

 

모르는 것을 배움으로써 삶에 필요한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람이 그 아래인 곤궁해서 배우는 사람과 다른 점은 배움으로써 유비무환을 자세를 가지고 있을 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곤궁해서 배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고집불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충고는 듣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하다가 어려움에 부닥친 뒤, 그 어려움을 통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고 개선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곤궁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고집불통으로 남의 말도 듣지 않고 스스로 어려움에 부닥쳤지만,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잘못된 방식대로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언급된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은 보편적으로 보면 간단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하면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무엇이 과연 올바른 앎이고 배움이며,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면 현대 시대는 돈을 잘 버는 게 최상일 것이다.

 

똑똑한 머리, 뛰어난 사업 수완, 뛰어난 화술, 뛰어난 외모 등 현대 사회에서는 돈 잘 버는 능력을 갖춘 게 최상이다.

 

다만, 공자님이 말씀하신 올바른 앎과 배움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도()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현대 사회의 잘 먹고 잘 사는 기준만으로 생각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과거의 기준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느 정도 과거와 현재의 타협점을 생각해서 올바른 앎과 배움을 정리하자면, 나의 삶을 적당히 영위하고, 유지하며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도덕적 규범을 준수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몸과 마음의 평안을 기준으로 삼는다.

 

몸의 평안은 건강해야 하고, 마음의 평안은 만족해야 한다.

 

몸의 건강을 위해선 굶지 말아야 하고, 과식하지 말아야 한다. 적당하게 움직여 주며 신체를 관리해야 한다.

 

마음의 만족을 위해선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의 삶에 오롯이 전념해야 한다. 과도한 감정의 오르고 내림을 경계해야 하며, 평소 지나친 자극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나를 건강하게 동기부여 하는 지나치지 않는 자극원을 추구해야 한다. 

 

배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함이다. 나의 건강과 나의 안녕을 위함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간단명료하게 떨어지지만, 그 이치를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진의를 놓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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