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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직장인의 잡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축복

by 열공열공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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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받는 이메일에 '희로애락'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축복이 언급되었다.

 

그래, '희락' 뿐만 아니라 '로애'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분명히 축복 같다. 

 

같이 지냄에 있어 '희락'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로애'가 항상 같이 따라다니기에 '희로애락'이라고 생각된다.

 

노여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슬픔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결국, '희로애락'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란, 노여움과 슬픔을 견디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 자신은 '로애'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인가?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나 역시도 '로애'는 싫다.

 

하지만, '희락'만 같이 할 순 없다는 건 공감한다.

 

같이 누리는 '희락'은 같이 겪는 '로애'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단편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기쁨과 행복이 있어야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많으면 그만큼 건강한 삶과 멀어진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필요하고 당연하다.

 

그래서, '희락'의 권리를 '로애'를 견뎌야 한다는 단편적인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희로애락'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1:1의 대응 개념이 아니라 좀 더 다르게 봐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같이 지내면서 '희락'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것을 추구해야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삶 속에서 '로애'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에, 그렇게 찾아오는 '로애'를 견디고, 다시금 같이 '희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가 진정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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